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앵글로색슨 7왕국 (문단 편집) == [[잉글랜드]] 통일 왕국의 탄생 == 7왕국 초기는 당대 기록이 없어서 형성 과정이 명확하지 않으며 이들의 경계도 서서히 생겨났다. 잉글랜드인들은 대체로 서로를 정복하기보다는 가장 강력한 왕에게 복종하는 방식을 택했는데 가장 강력한 종주국 왕을 [[아일랜드]]의 [[아르드리]]처럼 브리튼의 지배자라는 의미로 '[[브레트왈다]]'(brytenwalda)로 불렸다. 브레트왈다와 종주국은 나머지 왕국들을 명목상 종속국으로 삼았고, 각 왕국들에게 봉토를 수여하는 형태로 각 소왕(小王)들의 봉지를 인정해주는 대신 주종 관계를 유지했다. 7왕국 시절의 초창기인 5세기에는 남부 [[서식스]], 이후에는 7세기 초 번영한 동부의 패자 [[동앵글리아]], 7세기 중엽 펜다 왕과 8세기 오파 왕의 시절 번영한 중서부의 패자 [[머시아]], 버니시아와 데이라의 연합 왕국인 북부의 패자 [[노섬브리아]], 남부의 패자 [[웨식스]] 등 5개 왕국이 번갈아가면서 군림했다. 그리고 최종적으로는 웨식스가 주변의 쟁쟁한 경쟁자들을 모조리 격파하고, 잉글랜드 통일의 발판을 다졌다. 최초의 종주왕은 [[켄트 왕국]]의 [[애설버트]]라고 할 수 있다. 켄트는 해안가에 있어서 대륙과 접촉한 가장 발달한 나라였다. [[616년]] 애설버트가 죽고 동앵글리아의 왕이었던 조카 레드월드에게 잠시 권력이 넘어갔다가 노섬브리아가 부상했다. 7세기 초는 노섬브리아의 전성기였다. 에드윈은 서쪽 바다까지 영토를 확장하고 북쪽으로도 국경을 확장하여 요새(Edwin's burgh)를 지었는데 곧 오늘날의 [[에든버러]](Edinburgh)이다. 그러나 에드윈은 [[632년]] 그위네드와 머시아의 귀족 팬더의 동맹군의 침공으로 전사하여 머시아에 권력이 넘어갔다 팬더는 중부 잉글랜드를 연합하여 왕이 되었다. 머시아는 [[654년]] 노섬브리아를 침공했다가 패배하여 노섬브리아 왕 오스위가 다시 브레트왈더가 되었다. 그러나 [[670년]] 오스위가 사망하고 내분에 휩싸여 다시 머시아가 부흥했다. 머시아의 특출난 왕으로 오퍼(757-796)가 있다. 오퍼는 이남으로 세력을 넓혀 런던까지 판도에 넣었다. 오퍼의 업적으로 오퍼의 방벽이라는 [[토성(건축)|토성]]이 있다. 오늘날 [[웨일스]]와 경계를 명확히 하기 위해 건설된 240km 길이의 대규모 토목 공사였다. 오퍼는 내치에도 관심을 기울여 법률, 경제, 무역, 종교 여러 면에서 업적을 세워 앵글로 왕이라는 칭호를 받았다. [[프랑크 왕국|프랑크]]의 [[샤를마뉴]]가 오퍼를 동등한 왕으로 대우한 것이다. 그러나 오퍼가 사망하고 웨식스의 대두, [[바이킹]]의 침입, 무능한 후계자로 권력이 웨식스로 넘어갔다. 이처럼 7왕국은 대략 100년 단위로 번갈아가며 흥망성쇠했는데 500년대에는 [[켄트 왕국]], 600년대에는 노섬브리아, 700년대에는 머시아가 강성하다가, 800년대부터는 웨식스가 부상했다. 웨식스 왕 [[에그버트]](802-839)는 엘렌던 전투에서 머시아를 물리치고 브레트왈더로 인정받았다. 에그버트는 남부 잉글랜드 전역을 지배했으나 연합은 느슨했고 지배권도 확고하지 않았으며 바이킹을 막아낼 군대가 없었다. [[앵글로색슨]]인에게는 뚜렷한 [[우주관]]이 없었고 자신들의 종교보다 권위에 복종하고 [[상속권]]을 규정하는 등 여러 [[기독교]]의 교리가 국가 운영에 더 잘 부합했기 때문에 잉글랜드 왕들은 [[기독교]]를 받아들였다. 그러나 잉글랜드인들은 [[로마 교회]], 아일랜드와 스코틀랜드 [[켈트족]]의 교회라는 두 경로로 기독교를 접하여 서로 대립하기도 했다. [[부활절]] 날짜도 달라서 왕과 왕비가 다른 날을 지켜야 하는 경우도 었었다. [[663년]] 결국 노섬브리아 왕 오스위는 회의를 소집해서 로마 교회의 손을 들어주어 로마 교회가 잉글랜드를 종교적으로 통일했다. 나머지 6개 국가들은 시간이 흐르면서 서로 간의 전쟁에서 패배하거나 동쪽에서 침공해 들어오는 바이킹들의 침공에 고전을 면치 못했다. 9세기 무렵 앵글로색슨 왕조들은 데인족 바이킹의 침략을 받아 잉글랜드의 패권을 둔 전쟁을 시작했다. 하지만 웨식스의 명군이었던 [[앨프레드 대왕]]의 맹활약으로 유일한 독립국인 웨식스를 바이킹으로부터 지킬 수 있었다. 브리튼섬에 정착한 바이킹들을 바로 [[데인족]]이라 부른다. 그들은 노섬브리아 남부, 동부 머시아와 에식스 및 서식스, 그리고 동앵글리아를 정복했다. 그곳의 데인족들은 [[덴마크]]와 [[노르웨이]]의 고향과 밀접한 관계를 가졌으며, 지속적으로 브리튼 제도의 패권을 두고 웨식스와 교전을 벌였다. 이 시기를 '''데인로'''(Danelaw)라 부르는데 9세기 중반부터 925년까지 이어진다. [[앨프레드 대왕]] 사후 여러 명의 왕을 거치면서 웨식스-머시아 연합군과 데인족들의 왕국은 치열한 공방전을 주고 받았고, 10세기에 들어서자 연합군이 서서히 데인족들을 압도하기 시작해 그들이 점령한 도시들에서 하나 둘씩 몰아내는 데 성공했다. 머시아 동부의 도시들을 시작으로 [[동앵글리아]]의 왕 구트룸 2세를 전사시키며 동앵글리아를 합병했고, 노섬브리아의 데인족들을 성공적으로 정복했다. 7왕국의 잔재와 바이킹의 잔존 세력을 모조리 격파한 웨식스는 통합 앵글로색슨 왕국인 [[잉글랜드 왕국]]으로 국호를 변경했고, [[애설스탠]]이 잉글랜드 왕국 최초의 왕으로 즉위했다. 다만 이후에도 잉글랜드에는 바이킹을 비롯한 이민족의 침략이 계속되어 [[노르망디]] 공작 [[윌리엄 1세]]의 [[노르만 왕조]]까지는 정복 왕조가 반복되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